본문 바로가기

sound

Roger Eno - The Turning Year (Deutsche Grammophon, 2022)

영국 작곡가 Roger Eno의 앨범. 형 브라이언과 함께 Mixing Colours (2020)을 발표할 때 예견되긴 했지만, 마침내 로저의 DG 솔로 데뷔 앨범이 발매되었다. 로저는 형 브라이언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 데뷔를 했고, 각자의 활동 속에서도 유사한 장르적 경향성을 공유해왔으며, 음악적 변화 또한 서로 비슷한 궤적을 보였지만, 시간의 흐름은 둘 사이에 존재하는 각자의 고유한 감성과 표현의 차이를 더욱 견고하게 해주는 듯하다. 하나의 동전이 같은 질량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이노 형제의 전작이 보여줬다면, 각자의 솔로는 그 동전이 지닌 서로 다른 이면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 앨범은 로저의 새로운 작곡을 포함해 기존 곡에 대한 새로운 해석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여기에 타이틀과 커버 아트가 주는 묘한 암시적 분위기로 인해, 마치 개인의 음악적 회고와도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분위기는 Scoring Berlin과의 협연을 통해 더욱 깊이 있게 완성되는 느낌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프로듀서 Christian Badzura의 섬세한 개입도 큰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로저의 피아노는 집약적인 테마와 반복에 의한 점진적인 전개 등 미니멀한 표현을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SB는 그 무엇 하나 과장되지 않은 세밀한 표현으로 공간의 이미지를 구체화하고 있다. 현악의 다양한 텍스쳐를 복합적으로 활용하여 때로는 폴리포닉 한 사운드를 연출하기도 하고, 그 모든 질감을 단일화하여 균일한 색감의 사운드스케이프를 완성하기도 하는데, 이는 마치 일렉트로닉을 이용해 공간을 구성하는 앰비언트적인 접근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일부 곡에서 SB가 연출하는 사운드나 그 진행은 일렉트로닉의 특성과 유사한 모습을 띠고 있어, 마치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복원하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고전적인 양식의 공간 활용을 통해 로저의 테마가 지닌 현대 작곡의 특징을 부각하는 대목도 존재하는데, 피아노가 점차 내면으로 향하는 진행을 보여주는 반면, SB는 보다 풍부한 빛과 대답한 표현으로 안정적인 대비와 균형을 이루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물론 앨범에는 왼손과 오른손의 대위적 구성으로 이루어진 서정적이면서도 간결한 멜로디의 진행을 포함한 피아노 솔로도 수록되어 있어, 로저의 깊이 있는 음악적 이면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앨범은 곡 하나하나 각기 다른 구성 양식과 특징을 포괄하고 있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개별성이 하나의 단일한 정서적 질감으로 온전하게 통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앨범은 로저의 의식 속에 각인된 음악의 기억들이, 세월의 흐름을 담은 고목의 무수한 나이테가 모여 하나의 형상을 이루는 것처럼, 과거부터 단절 없이 이어진 현재가 고스란히 반영된 정서적 질감을 보여주는 듯하다.

 

20220422

 

 

 

related with Roger Eno

- Roger Eno - Dust Of Stars (Painted Word, 2018)

- Roger Eno - The Turning Year: Rarities (Deutsche Grammophon, 2023)

- Roger Eno - The Skies, they shift like chords... (Deutsche Grammophon,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