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앰비언트 계열 전자음악 작곡가 Sven Laux의 앨범.
2000년대 중반 테크노와 하우스 씬의 DJ로 등단한 스벤의 음악 활동은 201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주로 일렉트로닉을 기반으로 하는 앰비언트 계열로 정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최근 들어 보다 구체화한 방식으로 진화하게 되는데, 앰비언트적인 형상 속에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경향적 특징을 수용하는 독특한 음악적 형상을 선보이게 된다. 이와 같은 일련의 변화는 시기적으로 영화와 관련한 사운드 에디터나 디자이너로 참여하기 시작한 기간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며, 스크린을 위한 오리지널 스코어 작곡에서 보여준 음악적 특징 또한 최근의 모던 클래시컬의 경향성과 유사한 흐름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그의 음악이 흔히들 시네마틱 하다고 표현하는 통상적인 분위기와는 확실한 거리감을 보여준다. 대신 연주를 통해 묘사하는 정경은 다분히 이미지너리 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독특한 정서적 분위기와 더불어 묘한 시각적 느낌까지 전달하는 것은 무척 매력적이다.
최근 스벤의 작업은 여러 뮤지션과 일련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유형의 복합적인 사운드의 중첩을 활용한 흥미로운 접근을 다수 선보이기도 했는데, 이는 마치 자신의 음악적 표현을 정교하게 완성하고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일련의 개인적인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쿠스틱 악기를 직접 다루지는 않지만 고전적인 기악적 텍스쳐를 일렉트로닉 특유의 공간 속에 배열하고, 그 관계의 미묘한 균열과 응집을 교차하며 독특한 음악적 플로우를 완성하는 방식은 협업을 완성하는 상대 뮤지션과의 미적 역학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와 같은 사운드와 텍스쳐의 대질은 결국 스벤 자신의 언어와 표현으로 향해있음을 이번 작업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이번 앨범은 피아노와 현악의 개별 라인의 우연한 교차와 이를 통해 완성하는 미묘한 정서적 앙상블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피아노는 비교적 안정적인 톤에 균일하면서도 반복적인 미니멀한 라인을 구성하는 반면, 여러 음역대를 폭넓게 표현하는 현악기들은 다양한 주법과 텍스쳐를 활용하면서, 연속과 단절, 안정과 균열, 평온과 불안 등의 복합적 대질을 연출하고 있다. 긴 레가토의 라인을 중첩하여 복합적인 화성을 완성하면, 여기에 이질적인 단락이나 텍스쳐는 물론 패닝과 같은 주변적인 효과를 이용해 그 공간을 흔들고 흐트러트려 새로운 구성과 배열을 의도하는 듯한 일련의 과정을 보여준다. 때로는 그 결말에 있어 하나의 온전한 완결을 보여주지는 않는가 하면, 다면적인 정서적 교차를 고스란히 표출하며 끝을 맺는 듯한 모습을 띠기도 하는데, 이는 마치 영화의 열린 결말처럼 긴 정서적 여운과 사색의 여백을 청자에게 돌려주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일렉트로닉은 연주 악기의 사운드로부터 파생하는 것처럼 보이며, 산란하는 듯한 텍스쳐와 그 조합을 통해 연출하는 낯섦과 익숙함의 교차는 기악을 중심으로 하는 정교한 현대 작곡의 성과를 떠올리게 한다. 피아노와 현악의 기본적인 사운드를 중심으로 구성의 틀을 완성하고 있으면서도, 이처럼 주변적인 효과와 요소를 레이어링 하여 미묘함을 연출하는데, 특히 대질적인 여러 텍스쳐를 중첩하여 선명함이나 명료함보다는 다면적인 복합성을 의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때문에 그 느낌은 다분히 로우-파이적인 분위기를 보여주지만, 정작 음질이나 사운드의 해상도에서는 그와는 무관하며, 때로는 몽환적인 애트모스피어를 연출하는 듯하지만, 실제 그 내용에서는 서정과 불안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텐션의 연속일 때도 있다.
앨범의 각 곡은 ‘인내’, ‘희망’, ‘회귀’ 등과 같은 관념적 표제를 사용하여 작곡과 연주의 의도를 드러내고 있는데, 음악을 듣다 보면 이것이 우리의 통념 속에 존재하는 단순한 개념의 형태가 아님을 스벤이 보여주려 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음악의 진행이 보여주는 변화는 다분히 시각적이며, 연주를 통해 들려주는 앙상블은 다면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우리에게 사색적인 공간을 ‘남긴다는 것’은 이번 앨범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202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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