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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The Black Dog - Music For Photographers (Dust Science, 2021)

영국 전자음악 그룹 The Black Dog의 앨범. 1980년대 말 Ken Downie, Ed Handley, Andy Turner의 조합으로 결성되어 테크노를 "하우스 리스닝"의 미학으로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살아 있는 화석과도 같은 그룹이다. 1990년대 중반 에드와 앤디는 최근까지도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듀오 Plaid 프로젝트를 위해 팀을 떠났고, 켄은 긴 공백과 골절 끝에 2000년대 초 Dust Science 레이블의 오너인 Richard and Martin Dust와 새롭게 현 TBD의 진용을 갖추게 된다. '사진가를 위한 음악'이라는 앨범 제목은 사진을 취미로 하거나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 만한 타이틀임은 분명하다. 실제 앨범의 커버 아트는 마틴의 작품들로, 그는 자신의 사진을 연구(study)라고 겸손하게 표현하지만 이미 Brutal Yorkshire (2019)와 Brutal Sheffield (2021) 등의 사진집을 출판한 경력이 있는 포터그래퍼이기도 하다. 지난 TBD의 EP나 싱글은 물론 이번 앨범의 커버 아트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사진은 브레송이 이야기한 것과 같은 '결정적 순간'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인위적인 일상 사물의 정적 고요를 바라보는 듯한 순간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가브리엘레 바질리코나 요제프 수덱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앨범의 음악도 사진과 마찬가지다. 이들의 설명에 의하면 음악은 두 가지 규칙을 두고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하나는 사람의 목소리가 없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어느 장소를 방문하든 온전하게 연주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건축물이지만 오히려 사람을 배제하는 공간 혹은 현실의 '난폭함'을 사진에 담은 것처럼 음악에는 목소리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흥미로운 점은 장소적 보편성과 관련한 이들의 접근 방식인데, 건축물의 구체성을 추상화하는 대신 사진집에서 주요 모티브를 구성하는 배타적인 난폭함에 반응하는 정서적 잔향을 담으려고 했다는 점이다. 이들 두 가지 요소는 신서사이저의 옅고 날 선 드론과 리버브에 의해 팽창된 연주 악기의 사운드 등과 겹치면서 사람의 온기가 존재하지 않는 듯한 황량한 분위기를 연출하게 되는데, 이는 마치 마틴의 사진을 위한 음악적 큐레이팅이라는 인상을 줄 만큼 인상적인 일체감을 이룬다. 결국 '사진가를 위한 음악'이라고 하지만 어찌 보면 다분히 사적인 작업이면서도, 동시에 지역을 고립시키고 차별을 고착화하는 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음악으로 고발하는 듯한 느낌도 들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지역 사회에 대한 가슴 아픈 애정이 담겨 있다는 사실에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주문한 사진집이 도착하면 다시 한번 들어보고 싶은 앨범이다.

 

 

20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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