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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The Black Dog - My Brutal Life (Dust Science, 2023)

 

영국 전자음악 그룹 The Black Dog의 앨범.

 

최근 TBD의 작업이 지리 혹은 건축적 상징을 지닌 장소성에 대한 음악적 고찰을 담아내는 데 집중했던 모습을 보였다면, 이번 앨범은 그와는 조금 다른 결을 보여주는 듯하다. 마치 사진작가의 시각적 포착을 통해 그 이면에 존재하는 현상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듯한 이들의 음악은, 이번 작업에서는 마치 인간의 삶을 대상으로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결국 TBD가 지금까지 추구했던 음악적 사고에서, 그 소재만 변했을 뿐, 본질적인 관점에서 큰 차이를 두는 것은 아니며, 어쩌면 쇠락하는 현실의 공동체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한 개인의 삶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면, 결국 이들의 음악적 대상 또한 일관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나의 잔혹한 삶’을 풍경화와도 같은 사운드스케이프로 담아내면서도, 감정을 배제한 정서만을 다루는 듯한 담담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멤버 중 한 명인 Martin Dust의 사진집 Brutal Yorkshire (2019) 및 Brutal Sheffield (2021)와의 연관성을 떠올리게 하여, 이번 앨범이 담고 있는 음악은 TBD의 핵심을 요약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전달한다.

 

전체적인 구성은 무척 간결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각각의 레이어가 지닌 사운드는 저마다의 고유한 세밀함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은 개별 소스의 캐릭터와 특징은 음악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독립된 라인을 이루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소스와의 상호 연관을 통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반복적 패턴의 단순한 비트 시퀀싱만 보더라도, 각 스탭마다 저마다의 고유한 피치와 벨로시티를 지니고 있어 그 자체로 하나의 독특한 음악적 플로우를 완성하는데, 이는 비트의 본연의 기능을 담당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모듈레이션을 통해 곡의 흐름을 이어가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동시에 주변 레이어들과의 밀접성을 보여주며, 엔벌로프나 필터에 관여하거나, 반대로 그 웨이브의 특성을 반영한 패치의 변화를 통해, 독특한 음악적 플로우를 연출하기도 한다. 비트의 형식으로 드러나긴 했지만, 이는 노이즈의 정교한 모듈레이션을 통한 음악적 연출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랜덤한 신호는 그 자체 본연의 모습으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다른 사운드의 모듈레이션을 위한 소스로 이용되기도 하고, 곡의 텍스쳐를 이루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하는 등, 그 섬세한 응용은 앨범 전체를 통해 귀 기울여 볼 만한 흥미로움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 외의 사운드도 저마다의 고유한 엔벌로프와 캐릭터를 간직하고 있으며, 서로에 대한 연관의 방식 또한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간결한 구성은 상호 간의 유기성을 여유롭게 다루는 듯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과 움직임은 고유한 내밀함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각각의 소스 고유의 특징이나, 이들이 서로 연관을 맺는 방식을 통해 해당 트랙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기도 한다. 핵심적인 소스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상호 간의 대비와 대칭은 물론, 서로의 흐름에 미묘한 동기화를 이루며 멜로디 혹은 리듬에서의 독특한 정서적 하모닉스를 연출하는가 하면, 일련의 반복을 통한 점진적 변화를 통해 새로운 상호 개입과 연관을 만들어 내며, 마치 사운드를 통해 현실의 관계를 고찰하는 듯한 음악적 집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비교적 안정적인 호흡과 속도를 지속하며, 개별 소스의 특징과 그 연관의 다양성을 포착하는 모습은, 각각의 트랙이 형상화하는 묘사적 표현이나 그 이미지를 선명하게 한다. 특히 구성의 간결함을 바탕으로 하는 이와 같은 흐름은,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여, 이번 작업에서도 TBD 고유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구성은 간결하지만 이를 이루는 개별 요소들은 각자 저마다의 특징을 간직하며, 다양한 방식의 유연한 연관을 통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어, 마치 주변 현실을 사운드로 섬세하게 기록한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시간과 상황의 흐름에 따른 시선을 반영한 듯한 앨범의 흐름 또한 한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으로 전해지는데, 이 모든 과정에서 TBD 고유의 관점을 명확히 하고 있어, 차분하면서도 섬세한 진행이 전달하는 몰입은 무척 강렬하다. TBD의 핵심을 집약한 기념비적인 앨범이다.

 

 

202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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