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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Henrik Meierkord - Geschichten (Audiobulb, 2023)

 

스웨덴 첼로 연주자 겸 작곡가 Henrik Meierkord의 앨범.

 

사민주의적 시스템이 남아 있던 시절의 스웨덴에서 자란 헨리크는, 하나의 악기를 의무적으로 선택해서 교육을 받아야 하는 전통에 따라 첼로를 선택했고, 이러한 학생 시절의 경험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앰비언트라는 장르적 특징을 공유하면서, 그의 음악에는 철학, 자연, 일상은 물론 불안, 혼돈, 조화 등의 다양한 감정과 더불어 주변의 움직임과 소리 그 자체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이는 마치 헨리크에게 있어 첼로는 단순한 악기 이전에 문자와도 같은 도구이며, 음악은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언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헨리크는 2020년대 이후 프로젝트나 그룹은 물론 여러 뮤지션들과의 협연과 개인 작업을 포함해, 1년에 10편 가까운 앨범을 발표할 만큼 활발한 음악 창작을 선보이고 있는데, 각각의 작품은 저마다의 고유한 주제를 지니며, 그에 알맞은 표현을 담고 있다. 때문에 그의 음악을 하나의 스타일로 정형화하기는 힘들지만, 그 어떤 순간을 듣더라도 헨리크 특유의 정서적 분위기를 포착할 수 있을 만큼 유니크한 면모도 함께 지니고 있다. 복합적인 정서 혹은 사고의 다면성을 첼로 라인 각각에 담아 거대한 흐름으로 엮은 비장한 드론은 인간 내면의 총체를 담아내는 듯하여, 그 자체만으로도 웅장하면서도 경이롭기까지 하나.

 

헨리크가 지금까지 다양한 테마를 다뤄왔지만, 이번 앨범만큼 개인사와 관련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낸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과거 가족과 관련한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자신이 자란 고향에 대해서도 직접 언급하고 있다. 헨리크는 일 년에 두 번 스웨덴에서 독일로 건너가 그곳의 가족을 만났던 기억을 전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 전쟁 중에 스웨덴으로 피난 온 아버지와 70년대 이후 태어난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다룬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한 책임감과 죄책감”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과 그들이 속한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전한다. 때문에 이번 앨범은 지금까지 헨리크가 들려준 그 어떤 음악보다 어둡고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첼로가 지닌 기악적 표현을 활용한 숨 막히는 드론의 플로우가 중심을 이루며, 중저역에서 고역에 이르는 악기 고유의 음역대를 모두 활용하여 감정의 모든 에너지를 사운드에 응축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곡의 성격에 따라 음역대의 조합은 다변화하며, 매시브한 흐름을 연출하는 공간과 개별 라인의 진행이 이어지는 영역을 구분하고 있어, 그 자체로 복합적인 감정의 조율을 직관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각 라인의 관계는 고전적인 카운터나 하모니 등의 역할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일련의 화성학적 구조 속에서 서로를 견인하는 긴밀함을 지속하고 있으며, 집합적인 하모닉스가 연출하는 독특한 효과는 개별 트랙의 주제와도 연관을 지니고 있어, 나름의 표제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첼로의 라인 각각은 마치 저마다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고, 이러한 사운드가 레이어를 이루며 매시브한 웨이브를 연출하고 있는데, 이는 마치 개인의 경험이 집합을 이루어 하나의 집단적 역사를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현악기 고유의 울림 주변 음원의 대비를 통해 기억과 경험을 묘사하는 듯한 청각적 경험을 제공하는가 하면, 일렉트로닉의 효과를 중첩해 흐릿한 회상을 연출하기도 하고, 로우파이를 연상하게 하는 텍스쳐나 음원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과거나 기억을 상징하는 역할로 등장하지는 않으며, 하나의 집합적인 사운드의 총체를 구성하는 요소로 활용되고 있어, 단순한 이분법적인 구분과는 거리가 멀다.

 

이전 세대의 전쟁과 관련한 개인적인 경험을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음악이 전하는 무거운 울림은 현재 유럽에서 1년 넘게 벌어지고 있는 참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 참상의 기억은 세대와 세대를 통해서도 전해지며, 헨리크는 이에 대한 실증을 자신의 음악을 통해 증명하는 듯하다. 헨리크가 전하는 자기 성찰의 메시지는 어둡고 무겁지만, 그 어떤 작품보다 귀 기울여 경청해야 할 이유가 충분한 앨범이다.

 

 

20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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