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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Henrik Meierkord, Pawel Kobak, Marco Lucchi, Rocco Saviano - Venusia (Ambientologist, 2022)

 

스웨덴 첼리스트 Henrik Meierkord, 플루트 연주자 Pawel Kobak, 이탈리아 전자음악가 Marco Lucchi, 기타리스트 Rocco Saviano의 컬래버레이션 앨범.


뮤지션 각각에 대해 따로 언급하지는 않더라도, 이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인상적인 활동과 폭넓은 협업을 통해, 각자의 개성은 물론 풍부한 확장성까지 겸비한 인물이라 평가해도 무리가 없을 듯싶다. 이들을 하나의 장르적 규범으로 묶어서 평가하기는 힘들며, 모던 클래시컬 혹은 현대 작곡의 다양한 흐름 속에서 일련의 경향적 공통점을 추출하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각자가 지닌 음악적 확장성을 생각해 본다면 이들의 협업은 의외의 사건이라고 보기 힘들며, 어쩌면 지금까지 자신들의 방식으로 진행했던 일련의 협력 작업을 보다 확대된 방식으로 완성한 것이 아번 앨범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번 앨범은 헨리크와 로코가 새로운 음악적 협업을 모색하던 중, 자신들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확장해 파웰과 마르코의 협력까지 얻어내 완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작업은 집단적 협업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여기에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 ‘베누시아’라는 타이틀을 통해 뮤지션 각자의 개성과 상징적 통합을 절묘하게 이뤄내고 있다. 개별 곡은 묘사적 특징을 지니는 듯한 타이틀을 통해 표제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그 의미에 담긴 복합적인 의미를 음악적으로 형상화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마치 사물의 근원적 본질에 도달하려는 듯한 깊이 있는 미학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앨범은 뮤지션들 각자의 기능과 역할에 따라 조합 가능한 다양한 양식의 앙상블을 선보이고 있다. 각 곡의 특징에 따라 그 상징성에 알맞은 연주자가 전면에 등장하며 메인 라인을 이끄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트랙마다 고유한 특징을 부각하는 연주를 들려준다. 앨범 전체는 시공간을 가늠하기 어려운, 신비주의를 콘셉트로 하는 듯한 비의적인 공간 연출이 인상적이다. 무게감을 더하며 낮은 곳에서 출렁이는 사운드 배드는 마치 드론과도 같은 효과를 연출하기도 하고, 테마와 멜로디를 통해 중세와 에스닉의 묘한 경계에서 작용하는 독특한 민속적인 분위기를 완성하기도 한다. 때로는 전경과 배경을 명료하게 구분하는 밀도의 차이를 두고 있어, 가득 들어찬 공기 위에 부유하는 듯한 메인 라인의 플로우를 통해 미묘한 신비감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조금은 느슨한 듯하면서도 조밀하게 얽혀있는 사운드의 공간적 위상은 독특한 공기감을 연출하는데, 때로는 안개와도 같은 분위기를 연상하게 하는가 하면, 시공간을 넘어서는 듯한 깊은 리버브로 몽환적인 시선을 자극하는 등, 다분히 공감각적인 모습을 통해 드러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뮤지션들 각자의 언어로 플로우를 이끌어간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인 조합을 통해 연출할 수 있는 고유의 음악적 질감을 합의적인 접근을 통해 완성한다는 느낌을 주고 있으며, 때문에 다양성 속에서도 균일한 음악적 밀도와 분위기가 두드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합의적 균형감은 규범적 엄밀함을 전제로 하지 않고 있어, 실내악적인 분위기와는 다른 오묘한 공간적 텐션이 지배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며, 이는 각 곡의 다양한 양식의 조합에도 불구하고, 앨범 전체를 하나의 균일한 텍스쳐로 엮어주는 주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와 같은 특징 속에서도 다면적인 확장성이 은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다.

사적 정서를 배제한 듯한 무척 건조한 분위기에 차가운 공기감마저 감돌지만, 네 명의 사운드의 조합으로 완성하는 공간적인 밀도 그 자체만으로도 깊고 풍부한 미적 경험을 제공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신화 혹은 전설 속 은유를 음악을 통해 현실에서 재현한 듯한 앨범이다.


202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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