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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Henrik Meierkord & Sole Gipp Ossler - Lära (Ambientologist, 2022)

 

스웨덴 첼리스트 겸 작곡가 Henrik Meierkord와 보컬 Sole Gipp Ossler의 듀엣 앨범.

 

지금 생각해보면 작년에 발매한 Ambientologist의 레이블 컴필레이션 Sustain Series, Vol. 2 (2021)은 단순한 편집 음반의 성격을 넘어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다양한 음악적 분화와 진화의 가능성을 개방하는 실험들로 가득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개별 뮤지션들이 담당했던 음악적인 헌정은 물론이고, 그동안 예상하기 힘들었던 다양한 협업들이 단편적인 형태로 수록되어 있었는데, 그중 몇몇은 이후 실제 작업으로 확장하거나 공동 작업으로 실현하는 예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헨리크는 Logic Moon과의 협업을 최근 Inseln (2022) 앨범으로 발전시켰고, 이번 EP에서는 보컬 솔과 함께 지난 컴필레이션에서 보여준 음악적인 아이디어를 보다 구체화하게 된다.

 

헨리크가 자신의 첼로와 작곡을 앰비언트의 경향적 특징 속에 녹여내며 독특한 음악적 세계관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다양한 장르적 특징들을 유연한 방식으로 포용하며 은연중에 음악적 다면성을 드러내며 창의적인 입지를 다지기 시작한다. 2010년대 초에 데뷔한 솔은 기타리스트 Pelle Ossler의 딸로 알려졌으며, 스스로는 Nina Simone의 선율적인 언어와 표현에서 영향을 받고 Sigur Rós와 Nils Frahm의 사운드스케이프를 결합한 음악을 지향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실제로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복합적인 정서적 대비와 우울한 질감은 이번 헨리크와의 협업에서 인상적인 빛을 발하게 된다.

 

앨범 타이틀 Lära는 스웨덴어로 ‘가르치다'와 ‘배우다'라는 뜻을 함께 포함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와 같은 단어들에서 느껴지는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의미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가 분명할수록 오히려 명료함을 드러내는 특징을 지니기도 한다. 단순히 상반되는 대당의 공존이 아닌 관계에 의해 그 의미가 규정되는 단어의 특성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헨리크와 솔이 함께 완성하는 공간 역시 음악적 상호 연관의 다양한 방식들을 통해 개별 곡이 지닌 고유한 인상을 완성하고 있다. 앨범은 단지 6개의 곡만 수록하고 있지만 첼로와 보컬 사이에 형성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의 음악적 연관과 관계를 담아내고 있다. 이는 솔의 보컬이 가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신 허밍이나 스켓 등과 같이 자신의 목소리를 기악적으로 이용해 소리 그 자체를 표출하고 있어, 첼로와의 관계에서 다양한 방식의 음악적 연출을 가능하게 한다. 고전적인 메인과 카운터의 관계를 비롯해 곡의 성격에 따라 그 역할과 기능을 바꾸면서 풍부한 형상의 음악적 이미지를 완성하고 있다. 엄밀한 공간적 구성 속에서 각자의 위상에 충실한 음악적 재현을 보이는가 하면, 부유하는 듯한 모습으로 자유로운 프레이즈의 플로우를 이어가는 순간도 존재하는 등 관계의 다양성과 연관의 구체성을 탐색하기 위한 여러 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첼로와 여성 보이스라는 사운드의 특성 탓에 미들 이상의 높은 음역대에서 음향 공간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여기에 개별 라인에 각기 다른 특징의 리버브를 적용하는가 하면, 다양한 소스들이 중음역대 이상에 배치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하이 영역에서의 부피감이 두드러진 모습을 보여준다. 자칫 청각적으로 쉽게 피로해지기 쉬운 배열임에도 나름의 정교함을 통해 이를 차가운 공기감을 느낄 수 있도록 연출하고 있어, 북유럽 특유의 정서적 분위기를 강하게 풍긴다. 여기에 테마에서 은연중에 드러나는 민속적인 영감이나 신화적인 몽환을 연상하게 하는 라인 등을 통해 노르딕 특유의 정서적 분위기를 반영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차가움과 고립적 신비감이 우울하게 포장될 수도 있지만, 피아노와 전자 악기의 섬세한 개입을 통해 직조되는 다양한 질감의 조합은 정서적 안정감을 유지하는데 나름 소소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일렉트로닉의 경우 특별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대목은 흔치 않음에도 현악기나 보이스에 수렴하는 톤 사운드를 통해 메인 라인들의 음악적 이미지에 디테일을 더하고 뉘앙스를 완성하는 역할을 묵묵하게 담당하고 있다.  

 

규범적인 조화와 균형만이 훌륭한 앙상블의 조건이 아니며, 각각의 사운드가 서로에 대해 어떤 연관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차갑고 우울하지만 인상적인 작업이 담긴 앨범이다.

 

 

2022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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