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베이스 연주자 Milo Fitzpatrick와 색소폰 연주자 Jordan Smart의 듀오 프로젝트 Vega Trails의 앨범. 밀로와 조던의 이름만으로는 이들의 존재감을 쉽게 떠오르지는 않지만, 각각 Portico Quartet과 Mammal Hands의 핵심 멤버(였다)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이번 VT 프로젝트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은 금세 커다란 기대감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둘은 이미 각자가 지닌 음악적 역량으로 여러 뮤지션들과 협연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앙상블의 일원으로서 그 역할이 어느 정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비해, 이번 프로젝트는 오직 두 뮤지션에게 할당된 공간에서 자신들의 음악적 표현을 전면에 두고, 서로가 지닌 특징들을 통해 새로운 시너지를 완성한다는 점에서, 시도 자체만으로도 이미 창의적인 발상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듯싶다. 실제로 앨범에 담긴 연주는 밀로와 조던이 각자 PQ와 MH에서 들려준 특징적인 요소들을 고스란히 활용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만큼 평소 이들이 들려준 자신만의 독특한 사운드 톤은 물론 시그니처와도 같은 라인에 대한 접근 방식도 종종 눈에 띄고 있으며, 새로운 음악적 합의를 위해 각자의 방식에서 물러서 있다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이 VT라는 공간에서 함께 연출하고 있는 음악적인 이미지와 그 합의 방식은 기존 각자가 활동하는 그룹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경험이라 놀랍고 신선하다. 서로에 대한 접근은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지 않는 대신 대담하면서도 놀라운 개방성을 지니고 있다. 어쩌면 이와 같은 방식 때문에 각자가 지닌 고유의 색을 고스란히 듀오의 공간에 녹여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며, 실제로 이 둘은 상대의 모든 프레이즈를 수용하면서도 그에 합당한 자신의 표현을 이어가며 놀라운 앙상블을 완성하고 있다. VT의 연주에서 느껴지는 밀도감은 일정 부분 자연스러운 리버브에 의해 연출된 효과이기도 하지만, 상대의 연주에 대해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 공간을 적극 활용하여 만들어진 긴장과 조화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모든 공간을 베이스와 색소폰으로 가득 채우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여백 속에 더 많은 의미를 담아두려는 듯한 접근도 쉽게 허용하고 있어, 풍부한 정서적 밀도감을 경험하게 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각자 자신의 악기 외에도 부분적으로 피아노, 일렉트로닉, 루프와 같은 요소들을 활용하고 있어, 듀오의 공간에 보다 풍부한 뉘앙스와 디테일을 더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각자의 연주를 중심으로 하는 표현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결코 단조롭지 않은 다양한 테마들을 통해 VT가 지닌 풍부한 표현 방식들을 전달하고 있는데, 기존 각자의 음악적 양식에서 차용한 접근들은 물론, 유럽이나 동양의 민속적인 요소들을 포함하는 등의 풍요로운 탐미적인 태도를 엿볼 수도 있다. 밀로나 조던 모두에게 처음 제공된 공간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이 안에 무엇을 채우고 비워야 할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완성되고 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온전한 감동을 전해주는 앨범이다.
20220508
related with Milo Fitzpatrick (as Portico Quartet)
- Portico Quartet - Art in the Age of Automation (Gondwana, 2017)
- Portico Quartet - Untitled (AITAOA #2) (Gondwana, 2018)
related with Jordan Smart (as Mammal Hands)
- Mammal Hands - Shadow Work (Gondwana,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