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nd

Volker Bertelmann -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Netflix, 2022)

 

Netflix 오리지널 영화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2022)의 OST 앨범.

 

국내에서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라는 제목으로 공개되었으며, 독일 작가 Erich Maria Remarque가 자신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바탕으로 집필한 Im Westen nichts Neues (1929)를 원작으로 한다. 전쟁 직후 보수화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당시 독일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탄생한 반전문학이며, 전쟁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탄 내는가를 묘사하고 있어, 영웅주의의 시각에서 전쟁의 경험을 집필한 동시대의 작품 Ernst Jünger의 ‘강철 폭풍 속에서’ (In Stahlgewittern; 1929)와 비교된다.

 

이번 넷플릭스 판은 1930년과 1979년에 이어 세 번째로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전작들과는 다른 극적 요소의 개입을 통해 원작이 지닌 의미를 보다 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다. 원작이나 전작이 전쟁의 참상에 집중했다면, 이번 넷플릭스 판은 젊은이들의 생명을 참호 속에 갈아 넣은 기성세대의 모습을 등장시킴으로써, 명확한 극적 대비를 부각하고 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파리 입성의 부푼 꿈과 희망을 선전하지만 신병이 되어 도착한 전선은 교착에 빠진 현실 지옥 참호였고, 전장을 책임지는 장군이 잘 차려진 식탁 위 음식을 개에게 던져주는 동안 병사들은 매일 같이 순무빵으로 연명하는가 하면, 휴전 협상을 주도하는 인물조차 자기 구두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품위를 지키려는 순간에도 군인들의 군화는 진흙 속에서 마를 날이 없다. 전쟁 그 자체가 직업인 장교와 달리, 각자 다른 일상과 꿈을 지닌 개인은 서로 적으로 마주치고 상대를 죽여야 하는 순간에도 “꼼라드”라는 단어 하나로, 전장에서 소모되어야 하는 운명 속에서의 동류의식을 확인하기도 한다. 또한 영화의 넓은 프레임 양쪽 폭을 넓게 활용해 극단적인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묘사하는가 하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벌어지는 참혹함을 극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번 OST를 담당한 독일 작곡가 Volker Bertelmann는 Hauschka라는 이름으로도 활동 중인 피아니스트이며, 최근에는 영화 음악에서 연이어 인상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볼커는 영화 속 서로 다른 양극단의 대비를 음악을 통해 재현하고 있으며, 때로는 마치 씬 스틸러처럼 극 중 상황에 적극 개입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이번 영화음악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강한 상징성을 지닌 연주를 반복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으로, 단 3개의 음으로 이루어진 거친 브라스 사운드의 중첩을 통해 불길함, 불편함, 불안함 등의 부정적 상황과 감정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핵심 테마는 구체적 상황에 따라 변주를 통해 확장된 양식으로 전개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오케스트레이션이나 다양하고 세밀한 기악적 편성을 통해 간헐적으로 반복해 등장하여, 해당 악절만으로도 현재 진행되는 상황의 부당함이나 이어질 불안함을 예견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에 비해 현악 사운드는 일반 병사의 심리와 정서는 물론 극 중 상황에 다가서는 표현을 보여주는데, 이 또한 음역대에 따라 특정 씬이나 인물의 특징에 알맞은 개별성을 지니고 있다. 다만 극 전체에 깔린 불안과 공포를 상징하는 듯한 거친 질감이 균일하게 작용하며, 때로는 앞에서 언급한 핵심 테마와 중첩을 이루며 불가항력적인 현재를 극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퍼커션 또한 강한 상징성을 지니며 다양한 곳에서 묘사적인 특징과 더불어 전투의 폭력적 양상과 오버랩을 이루는데, 상대의 참호에 진격한 직후 처음으로 탱크라는 거대한 무기를 마주했을 때의 불안과 공황은 물론, 일상의 루틴처럼 기계적으로 전투에 임하는 주인공의 모습 등에서 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개별 라인의 선명함을 강조하면서도 그 배경을 이루는 오케스트레이션을 통해,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개인의 상황을 집약하는 듯하며, 소총의 장전 소리 등과 같은 직접적인 표현 등을 포함한 강한 묘사적 특징으로 인해 해당 씬에서 마치 상황의 일부처럼 작용하고 있어, 가끔은 음악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배역을 수행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특히 마지막 주인공인 폴의 모습을 비추며 흐르던 스코어는, 뜻하지 않은 거대한 사건 속에서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의해 휘말린 한 개인에게도 자신만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의미를 음악으로 표현한 것 같아, 짧지만 강한 여운을 남긴다.

 

일반 병사는 전쟁에 대해 “아무도 원치 않지만 갑자기 들이닥치는 열병”과도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짐승이 되어버린” 권력을 쥔 기성세대 인간에게는 이를 시작하는 과정에서도, 또 이를 끝내는 과정에서도 “헛된 자존심”을 살리기 위한 명분과 절차가 필요한 행위에 불과하며, 종전을 15분 앞둔 상황에서도 자신과 가문의 치적을 위해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세우는 치졸함이 가득한 욕망의 참호일 뿐이다. 전방에서 전선을 지키는 젊은이도,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젊은이도, 거리에서 축제를 즐기는 젊은이도, 모두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한 우리의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없는 크리스마스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20221123

 

 

 

related with Volker Bertelmann (as Hausch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