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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Lambert - All This Time (Mercury KX, 2023)

 

Lambert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독일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Paul Lambert의 재즈 트리오 앨범.

 

2014년 데뷔 이후, 람베르트는 사르데냐 가면 뒤에 자신의 얼굴뿐만 아니라 이전의 음악 이력도 함께 감춰두고 있었다. 과거의 우연한 인터뷰를 통해 본명이 알려졌고 이를 통해 그가 Amsterdam Conservatory 출신이라는 것은 이미 공개되었지만, 졸업 후 활동이나 어린 시절의 음악 경험 등과 관련한 일체의 정보는 여전히 가면 뒤에 가려진 채 신비주의를 고집해 왔다. 이에 대해 람베르트는 최근 인터뷰에서 과거 자신의 음악 활동이 “부끄러웠다”라고 밝혔고, 이를 감추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에서 가면을 쓰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번 앨범에 대해 람베르트는 “여기까지 오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람베르트 본인의 입에서 “재즈”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비로소 그가 최근에 발표한 Positive (2021)나 Open (2022)에서 들려준 미묘한 임프로바이징의 정체가 무엇인지 명확해졌고, 그것이 단순한 재즈적 표현이나 은유가 아닌, 자신의 음악적 근간을 이루는 기원이었음을 알게 된다. 람베르트는 어린 시절 전통적인 클래식 피아노 교육에 대한 반발로 12살부터 재즈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고, 17살에는 Bill Evans Trio의 Explorations (1961)을 들으며 재즈에 대한 “낭만적 이상”을 꿈꿔왔던 것으로 전한다. 하지만 음악원 시절은 물론 졸업 이후에도 자신의 음악적 스타일을 펼칠 수 있는 환경과 거리가 멀었고, 결국 람베르트는 스스로 얼굴을 가리고 재즈가 아닌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장르 속에서 새로운 음악을 펼쳤다고 한다. 새로운 음악적 도전 속에서 큰 호평은 물론 해당 장르의 주요한 뮤지션으로 성장하는 동안에도, 그는 자신이 “여전히 재즈 뮤지션이라는 사실을 숨겼”지만 “이제는 재즈처럼 들리는 앨범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면서 이번 앨범의 의미를 고백한다.

 

이번 앨범은 람베르트 통산 여덟 번째 앨범이며, Mercury KX와 계열 관계에 있는 재즈 전문 레이블 Verve에서도 동시 발매되어 그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녹음은 베이스 Felix Weigt과 드럼 Luca Marini이 함께 참여해, 람베르트의 어린 시절 낭만적 이상을 상징했던 트리오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오른손의 라인에 종속되었던 왼손을 해방해 풍부한 선율적 구성을 완성하는 대목은 물론, 정교한 화성의 구조 속에서 멜로디의 의미를 섬세하게 채워가는 방식 등에서는, 람베르트의 어린 시절 영웅이었던 빌 에번스의 연주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구의 연주는 단순히 고전 시대의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현대적인 양식 속에서 새롭게 재구성한 표현을 마음껏 활용하고 있으며, 그 안에는 지금까지 람베르트의 이름으로 선보였던 음악적 경험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전통적인 연주 악기와 일렉트로닉의 관계는 이번 작업에서도 람베르트의 음악을 완성하는 중요한 표현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기존 그의 작업에서도 그래왔듯이 서로 다른 음향적 특징을 지닌 요소들의 관계를 유연하게 확장해 다양한 표현의 가능성을 개방하고 있으며, 이는 트리오라는 공간 속에서 풍부한 양식의 레퍼토리를 소화하는 자신들만의 접근을 완성하기도 한다. 전통적인 발라드 스타일의 연주의 경우 멜로디가 지닌 흐름을 충실히 재현하는 방식에서도, 펜더 특유의 울림과 독특한 대비를 이루며 공간을 가로지르는 신서사이저의 사운드를 통해 현대적인 감각을 완성하기도 한다. 베이스의 고전적인 워킹 대신 전자 음향의 코드 보이싱이 자리를 대신하기도 하고, 때로는 드럼 비트 또한 시퀀싱 된 듯한 톤과 패턴으로 연출하는가 하면, 악기의 톤과 사운드를 미묘하게 튜닝해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닉의 경계를 흐리게 하는 등, 재즈와 전자음악의 관계 속에서 음악적 다면성을 탐구하는 오늘날의 여러 창의적 아티스트와 그룹의 연주를 떠올릴 수도 있다. 그만큼 람베르트의 이번 앨범은 단순히 기존 재즈 스타일의 재현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오늘날 해당 장르가 마주하고 있는 음악적 쟁점에도 밀접한 연관을 이룬다는 점이 눈에 띄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발라드에서 퓨전, 재즈-록, 누 재즈 등, 장르 내의 다양한 스타일을 고루 다루면서도, 비교적 쉽게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분위기 또한 다양하여, 특유의 진지함은 물론 의외의 경쾌함도 담고 있어, 이번 앨범을 통해 람베르트가 얼마나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짐작하게 된다. 재즈가 주변 장르와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음악적 확장을 하는 모습에 관심을 갖고 있던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그의 작업에 늘 감동했던 람베르트가 함께 한다는 사실은 반가울 따름이다. 람베르트는 여전히 가면 속에 자기 얼굴을 감추고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자신의 음악적 근원을, 이번 앨범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202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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