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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Various Artists - Isolation III (Faint, 2023)

 

스페인 앰비언트 전문 레이블 Faint의 컴필레이션 앨범.

 

2010년대 중반에 설립된 Faint는 Warmth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스페인 전자음악가 겸 프로듀서 Agustín Mena가 설립한 Archives의 자매 레이블이다. Archives가 앰비언트와 덥 테크노를 중심으로 하는 출반 활동을 선보였다면, 1년 뒤에 설립한 Faint는 순수 앰비언트에 대한 지향을 보다 명확히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두 레이블의 서로 다른 특징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에 비해, 최근에는 Archives에 일정 부분 통합을 이루는 듯한 인상을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Faint는 아구스틴의 또 다른 개인 프로젝트인 SVLBRD의 음악을 선보이는 창구로 주로 활용되고 있으며, Archives에서 발매하는 자신의 Warmth 음반을 포함하여 다른 뮤지션들의 작업 상당수에서도 앰비언트적인 특징을 강하게 반영하기도 한다. 그만큼 두 레이블은 큰 틀에서 차이보다는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나름의 형식적 엄밀함을 반영한 분류상의 구분으로 두 음반사는 서로 각자의 음악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이번 앨범은 Isolation (2020)와 Isolation II (2021)에 이은 세 번째 시리즈로, 그 타이틀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나름의 균일한 음악적 혹은 정서적 분위기를 바탕에 두고 완성한 콘셉트 작업의 성격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는 이전 Peaks (2018) 컴필레이션에서 보여준 일련의 다양성과는 다른, 엄밀한 큐레이션을 포함하는 집단적 동의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레이블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창의적 합의라는 인상도 갖게 한다. 이와 같은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드는 이유는 참여한 뮤지션들 각자의 고유한 개성이, 일련의 정서적 중력을 향해 수렴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인데,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다 보면 마치 하나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이어지는 듯한 균일한 안정감이 깊은 몰입을 유도하기도 한다.

 

앨범에는 SVLBRD이라는 이름 대신 Warmth로 참여한 아구스틴 본인을 포함하여, David Cordero, Lauge, Misleading Structures, Pepo Galán, Robert Farrugia, José Soberanes 등, 대다수가 중량감 있는 뮤지션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Applefish나 Velvet Rope Crowd Control과 같이 주목할만한 거물급 신예도 함께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들 대부분은 Faint보다 Archives를 본진 삼아 활동하는 뮤지션들이며, 다른 레이블에서도 서로 다양한 방식의 협업을 자주 진행하는 등, 평소에도 여러 교류를 이어왔던 동료들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와 같은 일상의 긴밀함이, 각자 고유한 개성을 지닌 뮤지션들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균일한 정서적 질감을 앨범에 담아낼 수 있었던 소소한 요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정서적 분위기의 일관된 흐름에도 트랙 곳곳에서 뮤지션 개인의 음악적 특색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은 이번 앨범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David Cordero는 개별 사운드가 지닌 고유한 역할에 집중하면서도 유기적인 배열을 통해 공간의 차가운 온도와 깊은 밀도를 정의하는 음악적 치밀함을 선보이고 있으며, Applefish는 명료한 개별 음원의 섬세한 엔벌로프와 레이어링을 통한 차분한 빌드-업을 통해 고립적 몽환의 정서적 긴장이 응축되는 과정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Lauge는 노이즈 플로어와 사운드 베드의 대칭적 조합을 통해 밀도 있는 드론의 플로우를 연출하여 정서적 긴장을 표현하고, Misleading Structures는 특유의 사운드스케이프의 고요한 웨이브에 묘사적 특징을 지닌 텍스쳐를 레이어링 하여 심미적이면서도 은유적인 형상을 완성하는가 하면, Pepo Galán의 경우 복합적 요소를 활용하여 다면성을 지닌 어두면서고 차분한 공간적 분위기와 불안한 긴장을 그려내고 있다. Velvet Rope Crowd Control은 서로 유사한 특성을 지닌 여러 음역대의 음향을 중첩하여 밀도 있고 몽환적인 공간을 완성하고 그 위에 보이스 플로우와 내레이션을 조합하여 시네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가 하면, Robert Farrugia는 관악과 현악 등 어쿠스틱 계열의 사운드를 활용해 고전적이면서도 친숙한 플로우를 완성하여 안정적 몰입을 제공하고 있다. José Soberanes는 필드리코딩을 통한 묘사적 표현을 활용하여 음악적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그 과정에서 상징성을 지닌 사운드와 다양한 요소 및 효과를 조합해 묘사적 공간을 완성하고, Warmth는 서로 대칭과 대비를 이루는 복합적인 플로우의 중첩을 통해 깊이 있는 밀도를 연출하면서도 긴장과 이완의 요소를 균형 있게 배열하여 안정적인 마무리를 보여준다.

 

이처럼 앨범은 개별 뮤지션마다 각자의 고유한 접근과 구성을 통해 각기 다른 음악적 표현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앨범의 콘셉트에 충실한 재현을 보여주고 있어, 전체적으로 일련의 균일한 흐름을 이어가는 집단적 합의를 실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고립’이라는 테마를 대하는 작가들 각자의 태도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기도 하며, 때로는 통일적 합의를 위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분위기의 연출을 보여주는 등, 작가 개인은 물론 레이블의 음악적 정체성과 관련하여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는 다양 지점을 포함하고 있어 무척 흥미로운 앨범이다.

 

 

2023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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