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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Hania Rani - On Giacometti (Godawana, 2023)

 

폴란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Hania Rani의 앨범.

 

음악가로 본격적인 데뷔를 한 지 불과 1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고향인 폴란드는 물론 유럽을 넘어선 높은 인지도를 보여준 데에는, 그녀가 단지 훌륭한 피아노 스페셜리스트여서도 아니고, 독특한 세계관을 지닌 작곡가여서도 아니다. 그녀의 음악과 연주는 스스로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간직한 감정과 정서를 마주하고 있으며, 그 안에는 자신과 주변을 향한 따듯한 인간의 시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하니아의 음악과 연주는 보편적이면서도, 동시에 자신만의 고유함을 간직한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닉의 관계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자신의 공간 안에서 새롭게 정의하기도 하며, 개별 악기가 지닌 통상적 표현에서 전혀 다른 신선함을 발견하기도 한다.

 

하니아는 개인 작업 외에도 연극, 영화, 드라마와 관련한 음악에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Netflix 시리즈 Last Chance U: Basketball (2022)에서도 그녀의 트랙 몇 편이 등장했고, 지금까지 다수의 공연 몇 영상을 위한 음악 작업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이와 같은 작업 전체 중 일부가 Music for Film and Theatre (2021)에 공개되었으며, Great Art on Screen 시리즈의 일부로 기획된 Michele Mally의 다큐멘터리에서는 하니아가 직접 출연하며, 자신의 음악과 도시의 역사를 연결한 음악적 기행문 Venice: Infinitely Avantgarde (2022)을 발표하기도 한다. 이번 작업은 스위스의 조각가 겸 화가 Alberto Giacometti와 그의 가족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위한 음악을 담고 있다.

 

앨범은 OST의 성격을 지니면서도, 동시에 하니아의 개인 작업 중 하나라는 독특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감독 Susanna Fanzun은 이번 작업을 위해 하니아를 스위스 산속 고립된 장소를 소개했고, 그녀는 그곳에 오랜 기간 머물면서, 평소 자신이 좋아했던 자코메티와 그 가족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현재의 개인적 삶과 폴란드에서의 기억이 작곡의 주요 모티브가 되었다고 밝힌다. 때문에 음악은 영화적인 내러티브와는 다른, 작곡가의 개인적 취향과 정서가 담긴, 지극히 사적 표현이 가득하며, 이러한 특징은 개별 곡은 물론 앨범 전체의 분위기에도 큰 영향을 주는 듯하다. 멜로디, 진행, 구성 자체의 복합성보다는 간결함과 명료함을 부각하며, 피아노와 일렉트로닉의 연관성 또한 복잡한 레이어가 아닌 최소한의 상호 연관에 의해 작용하는 기능적 관계에 가깝다. 그만큼 피아노가 차지하는 중심적인 역할이 강조되며, 그 자체로 하나의 분명한 이미지를 완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번 앨범은 피아노를 중심으로 하는 진행 속에서도 일렉트로닉과 공간 혹은 이와 관련한 표현이 유기적인 구성을 보여준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곡의 구성이나 진행 자체는 미니멀하지만, 기계적 장치로서의 피아노가 발성할 수 있는 모든 소리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피아노는 펠트 한 톤으로 연출하고 있으며, 연주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메커니컬 사운드에 따로 이펙트를 입히거나, 때로는 그조차도 튜닝한 듯한 느낌으로 생생하게 전달하고, 이를 음악적 요소로 활용한다. 손가락으로 건반을 칠 때의 섬세한 타건음은 프로세싱을 거친 반복적인 비트 시퀀싱을 떠올리게 하기도, 때로는 그 자체가 잔잔하게 내리는 빗소리를 닮기도 하여, 마치 하나의 필드 리코딩처럼 기능하는가 하면, 때로는 타악의 퍼커시브 한 텐션이나 현악의 디스토션을 연상하게 하는 일종의 주변적 효과처럼 연주에 개입한다. 실제 튜닝하고 조율한 준비된 피아노의 연주를 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곡마다 미묘하게 다른 건반의 톤 사운드를 위해 VST로 재현한 것인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무엇이 되었든 하니아의 음악적 깊이를 전달하는 데에는 최적의 적합한 소리를 담고 있다. 특히 피아노와 일렉트로닉의 관계와 관련한 공간적 표현을 섬세하게 다루는 점은 인상적이다. 일렉트로닉은 연주의 라인과 좀처럼 직접적인 대응 관계를 만들지는 않지만, 피아노의 긴 서스테인에 차가운 리버브를 얹어 투명한 공기감을 연출하는가 하면, 딜레이가 서서히 공간 속에서 차갑게 소멸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마침내 피아노 자신도 차가운 공기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곡마다 미세하게 다른 공간은, 드라이하거나 볼드한 건반과는 상반되는 온화한 밀도로 잔잔하게 확산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피아노와 상반되는 공간적 분위기로 긴장된 연관을 만드는 등, 이번 작업에서의 활용과 연출은 무척 섬세하다.

 

최소한 간결한 요소들이 이루는 관계는 유기적 기능성을 보여주면서, 나름 개별 곡의 특징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하는 모습이지만, 하니아 특유의 균일한 정서적 분위기를 지속한다는 점은 틀림없다. 반복적 순환으로 서서히 부피감을 늘려가는 단순하면서도 자유로운 멜로디, 간단한 구성의 코드로 집약한 명료한 표현 등은, 미적 축약을 담아낸 듯하여 그 자체로 이미 구체적이기까지 하며, 때문에 더욱 진솔게 내면의 정서에 도달할 수 있는, 완숙미를 더한 하니아의 음악적 표현을 엿볼 수 있다. 일부 트랙에서 하니아의 오랜 음악 동료인 Dobrawa Czocher가 첼로의 레이어를 더해주고 있다. 고전적인 엄숙함과 현대적인 비장함이 하나의 표현으로 응집된, 하니아의 언어 그 자체를 드러내는 앨범이다.

 

 

20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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