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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Neil Cowley - Battery Life (Mote, 2023)

 

영국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Neil Cowley의 앨범.

 

1972년생인 닐은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 피아노를 연주하며 10살 때 Queen Elizabeth Hall에서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을 만큼 놀라운 재능을 보여줬던 것으로 전해진다. 10대 후반부터 소울과 펑크에 빠져 여러 밴드의 키보드 연주자로 활동했고, 이후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거쳐 2000년대 초 자신의 이름을 딴 Neil Cowley Trio를 결성하게 된다. 재즈 트리오의 고전적인 형식에서 벗어난 창의적 표현을 담아낸 NCT의 활동은 10년 이상의 여정을 지속하며 수많은 깊이 있는 음악적 성과를 보여주었지만, 아쉽게도 닐은 Spacebound Apes (2016)와 Spacebound Tapes (2018)를 마지막으로 팀의 해체를 선언하며 솔로의 길을 걷게 된다.

 

어쩌면 NCT의 마지막 앨범은 닐의 새로운 음악적 도전을 재즈 트리오라는 형식 속에 담아내고자 했던 최종적인 시도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 안에서 보여준 다양한 음악적 접근을 시도하며 새로운 장르로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줬던 노력은, 결과적으로 이후에 이어진 닐의 솔로 작업을 통해 보다 명확한 정체가 드러나게 된다. 이미 예고되었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Hall of Mirrors (2021)를 통해 선보인 새로운 음악적 세계관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음악적 지반을 전제로 하며, 그 변화의 폭도 충격적일 만큼 커서, 동일 인물이라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앰비언트, 일렉트로닉, 모던 클래시컬 등의 경향적 특성을 종합하면서도, 해당 분야의 첫 작업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뛰어난 완성도는 물론, 음악가의 유니크 한 특징까지 담아낸 창의성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닐은 친절하게도 Building Blocks로 명명한 일련의 단편들을 통해, 현재 자신의 음악적 고민을 밝히는 동시에, 이후 진행할 작업의 개요를 대중에게 예고하기도 하는데, 작년에 선보인 Building Blocks, Pts. 4 & 5 (2022)와 같은 두 개의 EP는 이번 신보의 프로로그이자 예고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해당 미니 앨범들에서 인상적이었던, 일렉트로닉을 바탕으로 하는 접근 속에 재즈의 임프로바이징을 조심스럽게 접목하는 시도는 이번 앨범을 통해 보다 구체화된 양식으로 완성하고 있으며, 그 가능성의 다양한 방식을 체계화하고 있는 듯하다. 피아노의 연주와 앙상블을 이루는 다양한 전자 음향의 소스들은 마치 실제 연주 악기의 특성을 추상화해 일렉트로닉으로 재구성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때로는 이전 트리오의 구성을 해체하고 새로운 언어와 확장적인 표현으로 다시금 정의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구성 속에서 즉흥적 모티브의 공간을 자연스럽게 개방한다는 점이 이러한 느낌을 더욱 강화하기도 한다. 임프로바이징은 기존 트리오와 같은 직접적인 방식과는 의도적인 거리를 취하고 있어, 다소 함축적이고 집약적인 프레이즈를 통해 현재의 공간적 특성에 알맞은 양식으로 간소화하고 있지만, 새로운 음악적 언어 속에서 이전의 표현을 재현하기 위한 나름의 신중한 접근을 엿볼 수 있다.

 

어쿠스틱 피아노를 사용하지만 톤과 사운드에 다양한 이펙트를 걸어 일렉트로닉의 텍스쳐를 얹어 다면성을 담아낸다.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닉 사이에 있는, 의도된 절충을 명확히 하는 피아노 사운드는 마치 자신의 현재 음악적 지평을 반영하는 듯하다. 미니멀한 표현이 주를 이루며, 마치 아르폐지에이터나 스탭 시퀀싱을 통해 만든 반복적인 라인이 중심을 이루지만, 섬세한 벨로시티, 미세한 다이내믹스, 미묘한 싱커페이션 등의 흔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어 연주의 특성을 명확히 한다. 반복적인 미니멀한 플로우를 기반으로 하지만, 다양한 공간계 이펙터의 활용을 통해 흐름에 따른 부피와 밀도의 변화를 동반하며, 나름의 음악적 내러티브를 완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다양한 공간계 이펙터의 활용은 단순한 음악적 플로우의 디테일을 보완하는 것을 넘어 곡 자체의 특성을 정의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는데, 이는 미니멀한 연주의 풍부한 뉘앙스는 물론 그 해석과 의미를 다면화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물론 개별 요소의 특징을 섬세하게 부각하고 활용하면서 곡 전체의 균형 속에 배열하는 구성의 디테일 또한 인상적이며, 이는 앨범 전체의 미적 완성을 가능하게 한 요인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일렉트로닉, 모던 클래시컬, 앰비언트, 재즈 등의 다면적 특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이를 하나의 통합적이면서도 간결한 언어와 표현으로 구현하기 위한 진지한 접근을 담고 있다. 닐이 2018년도에 새로운 솔로 프로젝트로 전향하며 던진 음악적 화두에, 이제는 그 어떠한 의문도 제기하기 힘들고, 트리오 시절부터 환호했던 오랜 팬의 입장에서 묵묵히 그의 작업을 꾸준히 응원한 보람을 느끼게 하는 앨범이다.

 

 

2023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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