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nd

Neil Cowley - Fragmented Recall (Mote, 2023)

 

영국 피아니스트 겸 전자음악가 Neil Cowley의 앨범.

 

2018년 트리오 해체 이후 새로운 장르적 도전을 향한 닐의 음악적 행보는 나름 인상적인 여러 성과들로 이어지는 듯하다. 과감한 음악적 단절을 암시하는 순간도 존재했지만, 최근 들어 지금까지 임프로바이저로서 자신이 행해왔던 음악과의 연관을, 일렉트로닉이라는 새로운 영역 속에서 구현하려는 일련의 접근을 선보이기도 한다. 시퀀싱이나 모듈레이션을 기반으로 하는 작업 속에서도 피아노의 기악적 특징을 접목하기 위한 노력들을 보여주는가 하면,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음악적 다면성을 완성하기 위한 시도를 끊임없이 이어오고 있다. 전자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최근의 성과들 또한 이와 같은 닐의 다양한 음악적 시도와 변화의 흔적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번 작업 역시 기악 연주와 일렉트로닉의 관계에 대한 사고의 확장을 담기 위한 고민을 담아내고 있다. 앨범의 표지에서 직전 Battery Life (2023)와의 연관성을 짐작할 수 있는데, 전작의 몇 가지 소스를 활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리믹스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작업에 기반하여 녹음을 완성하고 있으며, 실제 내용에서도 새로운 음악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의미 있는 차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번 앨범은 일렉트로닉과 기악적 연주 사이의 접점을 확인하기 위한 작업을 반영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다양한 시퀀싱 혹은 모듈레이션과 피아노 연주 사이에는 일방적인 구조적 우위가 존재하지 않는 듯하며, 그렇다고 일련의 균형점에 수렴하기 위한 의도적인 접합 또한 특별히 보여주지 않는다. 때문에 둘 사이의 관계에서는 마치 관조적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치밀한 인과적 연관보다는 느슨한 거리감을 통해 상대와의 공간적 거리를 조율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둘 사이의 거리감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로, 로우-패스 컷-오프 된 건반 톤 사운드를 사용하고 있지만, 일렉트로닉과의 공간적 구분은 나름 명확히 하여, 각자의 자율적인 라인들로 이루어진 러프한 양식의 합주와도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분명한 점은 이와 같은 구성이 두 가지 표현 사이에서 형성할 수 있는 다양한 접점에 대한 사고를 보다 유연하게 확장한다는 사실이다. 일련의 확정적인 구성을 통해 연출하는 엄밀함 대신, 유연성과 개방성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다양한 사운드와 효과의 조합은, 의외성을 포함하기도 하고 색다른 감각적 경험을 제공하며, 예상 밖의 음악적 결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짧은 릴리즈에 볼드한 톤으로 조율한 피아노 사운드는 전체 공간의 중심에 위치하며, 간헐적으로 활용하는 딜레이나 리버브 외에는, 대체적으로 특별한 효과를 동반하지 않아, 나름 연주의 특징을 강조하려는 의도만큼은 명확히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렉트로닉의 공간은 좌우의 넓은 스테레오를 활용하며, 비트 및 스텝 시퀀싱은 물론, 여러 사운드 효과에 이르기까지,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균일한 특성이 이어지는 패드를 이용해 사운드스케이프와 같은 효과를 보여주는가 하면, 낮은 레이트의 LFO과 연출하는 비브라토나 피치의 변화를 동반하는 특징적인 음향을 활용하기도 하고, 좌우의 패닝을 이용한 공간 연출 등, 그 표현은 일관성보다는 다양성에 방점을 둔 듯한 모습이 확연하다. 이와 같은 피아노와 일렉트로닉의 다양한 사운드의 조합은 개별 곡의 특징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한 트랙 내에서의 실험적 표현을 완성하는 모티브로 활용되는가 하면, 개별 곡의 흐름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일렉트로닉의 다양한 표현을 통해 임프로바이징의 효과를 연출하기 위한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하여, 피아노 연주와 전자 음향의 관계에 대한 닐의 진지한 사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한다.

 

새로운 장르로 이전한 이후, 최근 5년 동안 닐이 공개한 여러 작업을 되돌아 살펴보더라도, 한 번의 시도에 머물지 않고, 현재 자신의 표현을 지속해서 갱신하려는 다양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와 같은 경험의 축적이 일렉트로닉 분야에서 자신만의 음악적 언어를 완성하기 위한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재즈 트리오에서 자신만의 독창성을 증명했듯이, 이번 앨범은 전자 음악 분야에서도 닐의 유니크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아닐까 싶다.

 

 

20230917

 

 

 

 

related with Neil Cowley